Breaking
중범죄(Homicide)
수 십년간 억울한 옥살이, 44년만에 혐의 벗은 남성
2019-06-26 18:29:55
장희주
▲30여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남성이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았다(사진=ⓒ셔터스톡)

[라이헨바흐=장희주 기자]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범죄로 인해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남성이 44년만에 혐의를 벗겨냈다.

그는 청소년이었던 17세에 당시 14세의 한 여자아이를 목졸라 죽인 혐의를 받고 3여년간 감옥에 수감됐다.

그러나 이 남성은 경찰이 자신을 때리고 읽지도 않은 자백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44년만의 무죄 판결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억눌한 옥살이를 한 이 남성의 이름은 키스 부시로, 그는 최근 법원의 무죄 판결로 비로소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체포된지 무려 44년만의 일이다.

부시의 누명을 벗겨준 롱 아일랜드 리버 헤드에 위치한 서포크 카운티 지방법원의 판사 앤서니 센프트 주니어는, "1970년대 부시가 잃은 것들을 다시 되찾아줄 수는 없지만 오늘 내가 회복해줄 수 있는 것은 무죄 추정"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이에 오랫동안 고통속에 살아왔다면서, 법원의 결정에 겸허한 마음이라고 답했다.

▲17세에 체포됐던 키스 부시는 44년후에야 혐의에서 벗어났다

 

부시의 수난 시작, 살인 혐의로 체포

부시의 시련은 44년 전 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시작됐다. 1975년 뉴욕 벨포트의 한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레즈 왓슨이라는 당시 한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당시 왓슨은 인근 공터에서 숨진채 발견됐는데, 강간당한 채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다. 부시는 이 사건 발생 나흘 후 체포됐으며, 자백서에도 서명을 강요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서명이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들은 그가 서명한 자백서에 담긴 내용을 더 신뢰했다.

게다가 당시 파티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부시가 그날 밤 소녀와 함께 떠난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증인도 있었는데, 그는 5년 후 이같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자신은 사실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부시에게 새로운 재판을 열 수 있는 기회로 작용되지 못했다.

부시는 이후 2006년 변호사인 아델 베른하르트에게 자신이 왓슨을 죽이지 않았으며 결백하다고 호소하면서 도움을 간청했다.

베른하르트는 당시 부시의 자백이 소녀를 어떻게 살해했는지에 대한 법의학적 증거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부시의 사건에 관심을 보인 인물이었다. 그는 이러한 절차가 내부적으로 일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부시는 2007년 가석방됐다(사진=ⓒ셔터스톡)

베른하르트의 조사

베른하르트는 이후 재조사를 통해 소녀의 손톱 밑에서 검출된 DNA가 부시의 DN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파티에서 부시를 피해자와 함께 목격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진술한 증인도 다시 인터뷰했다. 또한 부시의 자맥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당시 그를 체포한 형사들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2008년 판사가 기각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당시 그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옷과 다른 증거물에 대한 추가 검사도 요청했지만 이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하지만 베른하르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사건에 대한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즉 정보 공개법도 신청했다.

베른하르트는 이전의 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검찰이 부시의 변호인측에 부시가 아닌 또 다른 용의자를 심문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파티에 있었던 또다른 남성인 존 존스 주니어라는 남성도 해당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심문받았었던 것.

존스는 현재 고인이지만, 당시에는 자신이 만취해 파티장으르 떠난 후 공터에서 한 소녀의 시체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소녀의 시체 옆에서 발견된 빗이 자신이 떨어뜨린 빗과 닮았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진술은 부시의 변호사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명백한 증거 규정 위반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베른하르트는 이 모든 증거를 가지고 티모시 시니 검차를 찾아갔다.

시니는 유죄판결을 재검토하는 사무국을 창설한 인물로, 베른하르트의 조사를 검토한 후 법정에 출두, 부시의 판결이 철회돼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당시 검사들이 부시이외의 다른 용의자를 심문했었다는 사실을 재판 전 공개했어야한다며, 이는 검사들의 고의적인 은폐라고 비판했다.

시니는 또한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다시 번복한 증인의 진술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으며, 자백서에 진술된 살인 무기였던 아프로 핏 빗 역시 당시 소녀의 스웨터에 뭍은 혈흔이 미미했기 때문에 법의학적 증거와도 일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모든 증거로 부시가 왓슨을 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존 존스가 확실한 용의자라고 주장했다.

가석방에서 자유의 몸으로

그 무렵 부시는 가석방된 후였다. 그는 자신의 50세 생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둔 2007년 어느날 가석방됐다. 그러나 이후 PC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2013년 가석방 규정 위반이 적용돼 1년 더 복역했다.

당시 성범죄자였다는 이유로 인터넷 접속이 불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완전히 혐의를 벗고 코네티컷에서 지게차 운영자로 근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무려 44년만의 일이다.

[라이헨바흐=장희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