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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소말리아서 민간인 고문하던 사령관…現우버 운전자 충격적 과거
2019-06-12 11:15:34
장희주
▲우버와 리프트 운전사로 일했던 한 남성이 과거 소말리아에서 민간인을 고문한 군 사령관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사진=ⓒ셔터스톡)

[라이헨바흐=장희주 기자] 우버와 리프트의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한 남성의 충격적인 과거가 드러났다.

이 남성은 이전 소말리아군대(SNA)에서 근무했던 사령관 출신으로, 2004년 미국 버지니아 동부 연방법원에 고문과 살법적 살인 미수로 기소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소말리아군 사령관에서 우버 운전사로

이 남성의 이름은 유수프 압디 알리다. 그는 리프트 운전사로 약 76여회에 걸친 운행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운전사가 되기전 1980년대에는 소말리아군의 사령관으로 근무했다.

게다가 당시 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파르한 모하모우드 타니 워르파'라는 남성을 고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워르파는 소말리아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증언을 위해 미국에 도착, 소송에 승소하면서 총 5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갖게 됐다.

하지만 워르파의 변호사측은 현재 60대 중반인 알리가 이 정도의 피해액을 지불할 수단이 없어, 배상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알리의 이러한 전과에도 우버와 리프트의 운전기사로 어떻게 근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사실 알리에 관한 이같은 배경은 리프트와 우버에서 근무하기 몇 년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보도됐었다.

지난 1992년 캐나다의 CBC뉴스가 알리가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많은 이들을 고문하고 불구로 만들면서 처형까지 했다는 의혹을 다큐로 만들어 방영한 것이다.

CNN은 알리가 우버의 운전기사로 어떻게 근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알리는 우버에서 4.89점의 프로 다이아몬드 등급 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버와 리프트, 알리의 앱 영구 차단

우버와 리프트는 이와 관련 알리의 앱을 차단하는 조치에 나섰다. 우버는 성명을 통해 알리가 16개월간 회사를 위해 운전사로 근무했었다고 인정하면서, 그러나 알리의 모바일 앱 접속을 영구 차단 조치했다고 밝혔다.

리프트 역시 영구 차단 조치를 취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리프트는 특히 2017년 알리가 회사에 운전사로 지원했을때 범죄경력 조사를 통과했었다며, 이듬해인 2018년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신원조회를 통과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객의 안전이 업체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알리가 저지른 행동에 경악한다며, 이에 따른 평생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사는 모든 조사에 응하며 사법 기관을 도울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1992년 CBC뉴스는 알리가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많은 이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알리, 워싱턴 공항서 보안요원으로 근무

알리의 행적은 비단 리프트와 우버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는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도 보안경비 요원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2016년 CNN의 보도로 인해 범죄 배경이 밝혀지면서 해고됐다.

덜레스 공항의 운영을 감독하는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공항 당국은 알리가 계약업체인 마스터 시큐리티를 통해 채용됐다고 말했다.

이는 외부 업체에게 주어지는 '연방적으로 위임된 조사' 과정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조사 과정에 포함된 미연방수사국(FBI) 범죄 검사와 교통보안청의 위협 평가도 모두 통과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인권침해조사단체인 '정의와책임센터'의 캐시 로버츠는 알리의 범죄 혐의가 미국이 범죄 고문 법령을 가지고 있지 않을 당시의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현재 미국에서는 범죄로 기소될 수 없다고 것. 다만 그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은 고문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허용된다.

정의와 책임 센터는 인권침해자들을 찾아내 기소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비영리 단체로, 지난 2004년 소말리아의 전 총리였던 모하메드 알리 사만타의 소송건을 검토 중 알리의 사건을 발견, 조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센터는 사건과 관련된 목격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소말리아에 도착, 버지니아에 소재한 로펌인 DLA 파이퍼의 도움을 받아 워르파 사건을 접수했다.

당초 소송에는 전쟁 범죄와 반인륜적 혐의가 포함돼있었지만 이들 조항은 2017년 6월 기각됐다.

조사 결과, 알리는 1984~1989년까지 게빌리시에 주둔한 소말리아군 제5여단 사령관으로 복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그 곳에서 1969년 구데타로 정권을 잡아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를 수립했던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에 충성하며, 민간인과 투사들을 구분하지 않는 잔인한 방식의 반공작전들을 지휘했다.

그리고 당시 반유목 부족인 이사크의 일원이었던 워르파는 소말리아 북부의 농업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해당 지역은 소말리아 민족 운동이라는 반군 세력이 세워진 후 지지자로 인식된 많은 민간인들이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며 처참히 황폐됐는데, 워르파는 당시 농부였음에도 불구, 알리가 지휘한 제5여단에 붙잡혀 수감됐다.

그는 자신이 그 곳에서 1988년 1월부터 3개월간 구타를 당하고 사슬에 묶이는 등의 폭력과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고문 도중 최소 한 번이상 알리가 직접 참관까지 했었다는 것.

▲워르파는 당시 농부였음에도 불구, 알리가 지휘한 제5여단에 붙잡혀 수감돼 고문을 당했다(사진=ⓒ셔터스톡)

MIG 고문

워르파에게 행해진 고문 가운데는 MIG도 포함돼던 것으로 나타났다. MIG는 등 뒤에서 군인들이 피해자의 손과 다리를 결박, 몸을 U자 모양으로 만들어 고문하는 형태다.

팔과 다리는 묶인채로 공중으로 높이 떠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야한다. 이 모습이 마치 MIG 항공기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MIG 고문이라고 불린다.

알리는 또한 워르파에게 5발의 총격을 가해 손목과 다리에 상처를 입혔으며, 심지어 부하들에게 워르파를 매장하라고 지시까지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워르파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발견돼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후 워르파의 가족 교도관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면서 그의 석방은 가까스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라이헨바흐=장희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