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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범죄(Homicide)
36년간 독방에 수용된 '실버스타인'...사회적 격리, 잔인함의 한 예일까?
2019-06-12 10:45:20
조현
▲36년간 독방에 수감됐던 토마스 실버스타인이 최근 사망했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라이헨바흐=조현 기자] 백인우월주의자로 무려 36년간이나 독방 감옥에 갇혀 생활했던 토마스 실버스타인(67, Thomas Silverstein)이 최근 사망했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1980년대 후반부터 독방에 수용됐으며 최근에야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난 11일(현지시간) 콜로라도의 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실버스타인은 1977년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됐지만, 수감 중 추가된 4건의 살인 사건으로 인해 이후부터는 독방에 수용됐다. 즉 삶에서의 반 평생을 독방에서 지낸 것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랫 동안 독방에 갇힌 인물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격리를 잔인함의 완벽한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오래 지속된 독방 생활 

실버스타인은 어린 시절부터 빗나간 생활로 감옥과 잘못된 연을 맺었다. 초창기 청소년 시절 차량을 훔치고 경찰관과 싸움을 하다 붙잡혀 소년원에 수용됐지만, 출소한 후에는 마약에 손을 댔다. 이후 성인이 된 후에는 1975년 3건의 무장 강도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다시 교도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악명 높은 '아리안 형제단(Aryan Brotherhood)'이라는 백인 민족주의 갱단에 합류했다. 비디오 감시를 위해 24시간 형광등이 켜져 있는 독방에 수감됐는데, 음식은 문에 난 구멍을 통해 배급받았으며 한 달에 두 통 정도의 전화와 일부 방문자를 만나는 등 최소한의 활동만 가능했다. 이밖에 다른 사회적 접촉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1983년에는 노만 칼슨 교도국장으로부터 '인간 접촉 금지'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당시 그가 다른 수감자 2명과 교도관 1명을 흉기로 찔러 3건의 종신형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실버스타인이 당시 독방 생활을 하던 교도소는 콜로라도에 소재한 ADX 플로렌스 교도소다. 이 교도소는 중범죄자들, 즉 연쇄살인범이나 테러리스트, 마약상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그만큼 최악의 가혹한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령 책상과 침대, 의자등은 모두 콘크리트 붙박이로 제작돼 있으며, 화장실은 특정 시간에만 사용 가능하다. 운동은 하루 1시간으로 제한되며, 흑백 TV와 라디오는 교육 및 종교 채널만 이용 가능하다. 

교도소의 이러한 정책의 중심에는 사회적 고립 전략이 존재하는데, 1994년부터 이 교도소에 격리 수용된 실버스타인 역시 이곳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지내야 했다. 그리고 이 생활은 무려 36년간이나 지속됐다.

▲실버스타인은 1983년 교도국장으로부터 '인간 접촉 금지'라는 지시를 받았다(사진=ⓒ플리커)

독방 수감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감 

6년 전 NYT에 기고했던 저널리스트 윌버트 리도에 따르면, 실버스타인 같은 수감자들은 동료 수감자에게는 언젠가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일종의 권력 남용의 예가 됐다고 비판했다. 리도 역시 살인죄로 4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이력이 있다.

그러나 실버스타인의 이 같은 생활이 알려지면서, 미국 내 시민자유연합 등의 인권 단체들은 죄수들을 장기간 격리하는 것에 반대하며 항의하기 시작했고, 반면 연방 정부는 그가 최고 보안등급의 형무소에 적합한 매우 폭력적인 죄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국은 실제로 그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기를 바랐고,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이들을 해칠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완전한 고립이 한 인간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신적인 불안감이 있다. 실버스타인은 독방에 수용돼 있는 동안 환각과 심각한 불안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그를 진찰한 교도소 내 심리학자들 역시 독방 감금에 대한 이 같은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칼슨은 그러나 NYT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잃을 게 없는 한 남자의 추가적인 폭력을 막기 위해서 다른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당시 그를 사회적으로 완전히 격리시킨 정책을 옹호했다.

덴버의 순회 항소법원 역시 지난 2014년 실버스타인이 고립된 채 보낸 시간은 잔인하거나 특이한 형태의 처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신 그가 죄수로서 폭력적이었으며, 아리안 형제단의 리더였기 때문에 이에 따른 사회적 고립 정책은 타당했다는 설명이다.

독방 수감에 대한 감정 담긴 자서

실버스타인은 사망할 당시까지도 여러 편의 저서 및 자서전을 집필했는데, 이 책들에는 그의 독방 수감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무한한 시간이 끝없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사회적 고립 현상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2011년에는 흉기로 찔러 죽인 교도관의 유족을 만나 사과도 했다. 그의 사과는 석방 호소를 위한 법정 문서에 기록돼 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실버스타인은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정신 건강 옹호 블로그에 글도 쓸 수 있었다. 덴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명상과 요가, 분노 관리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는데, 불교도 배우면서 자신의 정신적인 면을 탐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처음 독방에 갇혔을 때보다 자제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 그는 독방 감금이 자신에게는 사형보다 훨씬 더 나쁜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또한  다른 일부 나라들처럼 대중에 의해 처형되지는 않지만, 미 정부 당국자들은 대신 사람들의 삶을 시멘트 무덤에 생매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계속 고문하는 것보다 차라리 처형하는 것이 더욱 인간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헨바흐=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