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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시리아 난민촌으로 간 적십자사…IS에 납치된 간호사의 생존 희망
2019-06-26 18:29:55
허서윤
▲ICRC가 매주 시리아 난민촌들을 방문하며 2013년 납치된 간호사 행방 수색에 나서고있다(사진=ⓒ123RF)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시리아 북부 난민촌을 방문해 지난 2013년 납치됐던 뉴질랜드 출신 간호사의 행방을 찾고있다.

60세 초반의 모습을 한 간호사의 사진을 난민촌의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다른 난민들과 비교하는 것으로, 그 곳에 거주하는 수 만명의 난민들틈에 혹시라도 있지 않을까하는 한줄기 희망만이 감돈다.

루이자 아카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ICRC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는 인물은 바로 루이자 아카비다. 아카비는 약 6년전 시리아 이들리브 지역에서 급진주의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납치됐다.

그러나 ICRC는 그동안의 목격담을 토대로 아카비가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아카비는 IS가 잡고있는 총 23명의 서방 인질 가운데 한 명으로, 일부는 이미 참혹하게 참수당하며 목숨을 잃었다.

사실 ICRC와 뉴질랜드 정부는 아카비에 대한 엄격한 언론통제에 합의하며 그동안 아카비의 소식을 미디어에서 다루지 못하도록 했다. 아카비의 국적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IS가 몰락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아카비와 당시 함께 납치됐던 시리아 운전자 2명의 행방을 빨리 찾아나서야 한다는 입장에 있다.

ICRC의 사무총장 이브 다코드는 이와 관련, ICRCR는 아카비가 IS에 납치된 순간부터 이들의 자유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해왔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2016년의 아부 카말, 2017년의 락까, 그리고 지난해 마야딘까지, 아카비와 다른 두 명에 대한 목겸담은 지속적으로 전해졌었다.

목격자 가운데 일부는 아카비가 IS가 통제하는 병원과 진료소에서 의료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는 아카비가 더 이상 수용소에 수감돼있지 않으며, 간호사로 일하면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보기관과 뉴질랜드 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목격담이 아카비의 생존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카비는 납치된 후에도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 증언되면서 생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납치와 협상

아카비는 2013년 10월 말 의료 용품 공급을 위해 이들리브 지역에 도착한지 3일 만에 납치됐다. 작업을 마치고 ICRC 차량을 이용해 다마스쿠스로 돌아오던 중 검문소에서 무장한 남성들에 의해 잡혀간 것.

당시 그를 비롯해 6명의 다른 동료들이 함께 있었지만, 이 가운데 4명만 다음날 풀려났으며, 아카비와 나머지 2명의 운전사인 나빌 바크도우네스와 알라 라잡은 풀려나지 못했다.

이들의 실종 소식은 곧 다코드에게 보고됐고, 이후 15명으로 구성된 수색대와 제네바 위기대응팀이 이들의 행방 찾기에 나섰다.

아카비의 동료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당시 이들이 하루나 이틀, 길어도 일주일안에는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재까지도 상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들을 납치한 단체의 신원도 처음에는 파악이 불가했지만, 당시 납치됐던 검문소 근처의 학교 벽에 새겨진 테러 단체의 로고로 인해 해당 테러 조직이 IS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ICRC는 아카비의 석방을 위해 IS와 본격 협상에 착수했다. 당시 IS는 아카비의 몸값으로 100만 유로를 요구하면서 이와 함께 자신들의 조직원 석방도 요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몸값은 2000만 유로로 상승, 일부 서양 인질의 석방 비용은 500만 유로로 떨어졌다.

협상 과정에서 ICRC는 IS가 아카비를 데리고 있는 것이 확실한지 알아보기위해 아카비의 카드에 적혀있는 보험 약관 번호를 묻기도 했는데, 당시 IS는 정확한 보험 번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전한 생존 희망

아카비는 납치된 지 몇 개월 후인 2014년 초 락까 외곽의 석유 시설 인근에 있는 다른 수용소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진다. 그 곳에서 당시 미국 인질이었던 케일라 뮬러와 같은 감옥에서 지냈으며, 바로 옆에는 제임스 폴리와 캔들 등 다른 유럽 및 서양의 남성 인질들이 지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카비는 뉴질랜드령 제도인 남태평양의 쿡제도에서 태어나 이후 뉴질랜드 본토에서 자랐다.

이후 1977년 웰링턴 병원에서 간호 훈련을 이수,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난민들을 치료했으며, 1988년에는 첫 적십자 선교에 배치돼 소말리아와 체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 지역에서 근무했다.

2010년에는 카티피 옵저버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록 작은 것이라도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CRC는 매주 난민촌들을 방문하며 아카비 행방 수색을 지속하는 중이다. 이들은 아카비가 IS의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신원을 못 밝히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난민촌의 텐트들 사이에 적십자기를 세워 아카비가 이를 발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다코드 사무총장은 자신들이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며, 아카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