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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러(Terrorism)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국 버린 '자발적 IS 참여 여성' 국제적 문제로 떠올라
2019-06-28 11:39:21
허서윤
▲고국을 버리고 IS에서 생활했던 외국 여성들이 현재는 난민촌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사진=ⓒ123RF)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 최근 이슬람국가(IS)에 찬동해 고국을 버렸던 여성들의 처치가 국제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잔인한 테러 행위를 자행했던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잃으면서 패망만을 앞두고 있다. 

이는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축하하고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한때 IS 지하디스트들의 가족이었던 이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들의 상당수가 현재 쿠르드족이 운영하는 알 홀 난민촌에서 거주하며 이전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최악의 삶, 난민촌

알 홀 난민촌에서 이들은 다양한 국적을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령 영어를 비롯한 러시아어, 프랑스어, 혹은 네덜란드 및 중국어 등 자신이 버리고 온 고국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다른 난민들처럼 쓰레기와 진흙으로 뒤덮인 환경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현재 삶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곳에서 천진난만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알 홀 난민촌은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많은 수의 거대한 텐트들로 둘러싸인 곳이다. 시리아민주군(SDF)이 경비를 서고 있으며, 시리아 및 이라크 등 IS가 장악한 곳에서 탈출한 이들이 거의 주를 이뤘다. 

지난해 12월 약 9,000명가량이었던 인구는 어느새 8배나 늘어났다. 이는 IS가 전투에서 지속해서 패배하면서 조직원의 가족들이 피난민이 돼 속속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민 수 급증은 식량 및 식수, 연료 등 난민촌에 필요한 자원 수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난민촌 관계자들은 국제 원조 부족으로 IS가 부활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여성 IS 

음 아이샤

22세의 체첸 공화국 출신인 아이샤는 이전의 삶이 훨씬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전의 생활은 현재 사는 난민촌에서의 삶과는 달랐다는 것. 

공습 중 사망한 남편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지아네타 야아니

34세의 야아니 역시 난민촌에서 체류 중인 외국인이다. 그는 IS에 합류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시리아로 왔으며 그곳에서 지하디스트와 결혼했다. 야아니의 남편 역시 전투 중에 사망했다. 

이후 다른 조직원과 재혼했지만, 그 역시 야아니가 임신 중이던 당시 전투에서 사망했다. 

현재는 3살 난 아들 아메드와 함께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야아니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네덜란드로 가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

▲대다수의 외국 여성들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사진=ⓒ123RF)

한 독일 여성

그러나 야아니와는 반대로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도 있다. 

바로 의사 남편과 함께 시리아로 온 한 독일 여성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여성은 현재 남편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다만 어린 아기와 함께 난민촌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지속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여성은 "독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로 독일이 이교도의 땅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죄가 다 용납되는 그런 부패한 사회에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것. 그는 이어 "차라리 시리아에서 힘든 삶을 견디겠다"며 "일시적이지만 내세는 영원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비참한 일상

이들 여성은 또한 SDF와 쿠르드족이 운영하는 이곳에서조차 이전 생활에서 따라야 했던 규율을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 

얼굴은 눈만 뺀 모든 곳을 베일로 덮고 신체는 모두 검은색의 옷으로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와 진흙투성이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으로 인해 이들의 검은 의상과 신발은 종종 더러워지기 일쑤다. 

아이들은 대부분 심한 기침과 콧물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친척들이 준 음식을 팔거나 아니면 물과 식량의 구호품을 얻기 위해 줄을 서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진다.

어찌 보면 전투로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남성들보다 이들 여성의 삶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대신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없고 다른 가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체성과 배경을 확인하는 것은 더 어렵다. 

물론 이들 여성에게 자신의 진정한 신분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실제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IS의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믿고 의지하고 있다. 

이는 난민촌 관계자들이 이들 여성을 풀어주지 못하게 막는 요인이 된다.

갈리온 수

트리니다드에서 온 수는 자신이 IS 치하에서 마치 매춘부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4년 자신의 남편과 함께 시리아에 도착했지만 이후 이혼하고 혼자서 아들을 돌보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도 잠시, 아들과 같이 있게 해주겠다는 이유로 무려 4명의 남성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했다. 

남편들이 그녀의 아들 역시 전투에 참전하도록 강요하자, 아들에게 여성의 옷을 입히고 함께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들은 이후 쿠르드족에 체포됐다.

수는 현재 자기 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매일같이 난민촌 입구에 서서 혹시라도 아들이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베일을 걷고 있는 것뿐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들을 만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TV를 보며 좋은 침대에서 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이다.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