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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美 인기 래퍼 '닙시 허슬', 총격 사망에 애도 물결 이어져
2019-07-01 13:41:08
김지연
▲미 래퍼 닙시 허슬이 총격으로 사망했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며 음악적으로 명성을 쌓아온 인기 래퍼 닙시 허슬이 3월 31일(현지시간) 총격으로 사망,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수백여 명에 이르는 팬과 지역주민은 이날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고 허슬의 옷가게로 모여들어 애도를 표했으며, 일부 팬들은 그의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허슬은 31일 낮 로스앤젤레스 하이드 파크 근처에 위치한 자신이 운영하는 의류 가게 '마라톤 클로싱'에 들렀다 괴한의 총격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허슬, 총격으로 사망

LA타임스에 따르면, 허슬은 당시 괴한으로부터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경찰에 의하면, 용의자는 옷가게 앞에서 허슬과 말다툼을 벌이다 이후 권총을 가져와 총격을 가한 뒤, 달아난 것으로 알려진다. 범인은 이틀 뒤인 4월 2일 체포됐다.

경찰은 범인이 허슬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라며, 갱 조직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슬을 살해한 동기는 단순히 갱 조직 관련보다 개인적인 원인으로 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허슬은 총격 사건 이전에 트위터를 통해 강력한 적이 있는 것은 축복이라며, 의미심장한 멘트를 올린 바 있다.

허슬의 이번 사망 소식은 지역주민들에게는 특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허슬은 이전 갱 조직의 일원이었다. 향후 조직 생활을 접고 지역사회를 위해 힘써온 인물로, LA 남부 저소득층의 흑인 거주지역의 재생 프로젝트에 주력하며 많은 지지를 받아왔다. 이와 관련 에릭 가세티 LA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LA는 허슬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모든 이와 함께 하고 있다"고 추모했다. 이어 "무의미한 총기 난사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갈 때마다 LA는 깊은 슬픔에 빠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료와 팬들의 애도 물결

허슬의 동료 뮤지션을 포함한 여러 유명 인사도 허슬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특히 LA 남부에서 자란 배우인 잇사 레이는 그동안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환원하는 모습을 보였던 허슬은 자신에게 영감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드레이크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허슬의 죽음으로 그의 에너지가 낭비됐다며, 허슬이 존경받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기 팝스타 리하나도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딸과 함께 찍은 허슬의 사진을 올렸다.

허슬의 노래를 프로듀싱한 애틀랜틱 레코드는 성명을 통해, 허슬이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일뿐 아니라 좋은 아버지이자 지역 공동체의 기둥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밖에 수많은 팬과 지역주민은 다음날 아침까지 옷 가게로 모여들어 촛불을 켰다. 

▲허슬은 갱 조직원에서 음악인으로 성공하며 지역사회의 갱생 노력에도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다(사진=ⓒ123RF)

 

허슬의 음악 인생

허슬이 음악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불렛츠 에인트 갓 노 네임(Bullets Aint's Got No Name)'이라는 곡이었다. 여기서 그는 스눕 독과 드레이크, 그리고 YG 등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서서히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에는 '크렌쇼(Crenshaw)' 믹스테이프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풀며 음악 업계를 놀라게 했는데, 당시 오프라인으로는 1,000장의 음반만 발매, 그것도 팝업 스토어를 꾸려 한 장에 100달러에 파는 전략을 수행했다. 그 가운데 100장은 제이지가 구매하며 또 한 번 업계의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빅토리 랩(Victory Lap)'의 첫 정규 앨범을 발표, 그래미상 최우수 랩 앨범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카디 비의 '인베이전 오브 프라이버시'가 상을 차지하면서, 허슬의 수상은 불발됐다.

갱 조직에서 성공한 인사로

허슬은 익히 알려진 대로 한때 갱 조직원으로도 활동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폭력 조직인 롤링 식스티즈 크립스에 입단하며 갱 조직원의 삶을 자처한 것. 그러나 이후에는 음악으로 커리어를 전향해 총기 폭력에 맞서면서 갱생 프로젝트에 주력했다.  사망한 다음날에도 원래는 경찰 관계자들과 만나 도시 갱생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특히 그는 현지 크렌쇼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크렌쇼를 대표하는 LA 시의회의 마키스 해리스-도슨 의원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허슬이 처음부터 '데스티네이션 크렌쇼 이니셔티브'의 주역이었다고 설명했다. 데스티네이션 크렌쇼는 LA 남부의 흑인 문화사를 육성하기 위한 커뮤니티 프로젝트로, 허슬은 소외 계층이 커나갈 수 있도록 여러 센터를 건설하는 등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