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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탈레반, 바스티온 기지 침투 가능했던 '이유'
2019-06-26 18:29:55
허서윤
▲탈레반의 바스티온 기지 침투공격으로 23명의 아프간 군인이 사망했다(사진=ⓒ123rf)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 철통 보안으로 여겨졌던 '바스티온 기지'가 탈레반 전사들에 의해 허무하게 함락돼, 그간 지적되온 관리소홀과 지도부 부패에 대한 문제점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9년 3월 1일 탈레반에 의해 자행된 바스티온 기지 침투공격으로 23명의 아프간 군인과 관계자가 사망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군에게는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사상자를 많이 냈던 전투로 기록됐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 전사들은 악취로 경비태세에 소홀한 틈을 타 하수처리 탱커트럭 내부를 통해 기지에 침투해 빈 창고에 몸을 숨겼다. 

그 외 다른 탈레반 전사들은 사다리를 이용해 두 겹으로 된 철망을 넘어 기지로 침투했다. 철망 너머의 길목은 움직임 감지 장비와 열화상 카메라로 감시가 이루어지는 무인감시 구역이었지만 감시를 담당하는 경계 근무자들이 침투 당시 잠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침투 사실이 발각되지 않았다.

 

내부의 조력도 있었다. 아프간 군의 한 중령과 원사는 탈레반에 기지 내부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그리고 어디에 숨어야 할지에 대한 정보를 건넸다.

헬만드 지방의회 의장인 아툴라 아프간은 "바스티온 기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군 시설이며, 헬만드 지역의 방어는 곧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방어하는 것"이라며, "헬만드를 잃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아프간 육군 215 군단 본부

이번 공격은 바스티온 기지에 대한 탈레반의 세 번째 공격이다. 아프간 군은 기지의 방어를 위해 미군에게 다시 한번 더 지원요청을 해야만 했다.

기지 내 탈레반과의 교전으로 기지방어 책임자와 운전병이 가장 먼저 희생됐다. 기지 한복판의 참호 속에 몸을 숨긴 20~30명의 탈레반 전사들은 이 둘이 참호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둘을 향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탈레반 전사들은 기지 내 군인들을 붙잡아 이들을 이용해 기지 내 다른 타격 목표물들을 찾아갔으며, 곧장 지휘소로 향했다. 

이날 바스티온 기지의 지휘소에서는 미군 병사들이 근무 중이었고 공격이 시작되자 이들은 아프간 군과 함께 기지방어를 도왔다. 기지 내 주둔 중이던 300명에 이르는 미 해병대도 감시탑에서 열화상 카메라에 의지하며 기지 중심부로 향하던 탈레반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미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기지방어를 위한 이날 교전은 탈레반 전사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창고에 공습지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하루종일 이어졌다.

 

드론과 교신 감청 등 첨단 기술을 동원했음에도 어째서 탈레반의 침투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공격 당일 존재했던 악기상 조건도 공중지원이 늦어지는 데 한몫했다.

바스티온 기지는 헬만드 지역 내에서 대탈레반 군사작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미군과 영국군, 그리고 아프간 군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냈던 곳이기도 하다.

바스티온 기지는 영국군이 건설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이 해외에 건설한 기지 중 가장 큰 규모다. 3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됐고, 세계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게 설계된 기지 내 활주로에는 하루 600대에 달하는 항공기가 뜨고 내렸다. 

이 외에도 기지 내부에는 에어컨이 구비된 헬스장과 피자헛, 미네랄워터 용기 생산설비, 그리고 기지 외곽을 따라서 최첨단 기지 방어 장비가 설치돼 있다.

바스티온 기지에서 쇼랍 기지로

아프간 군은 2014년 미군에게 기지운영권을 가져온 이후 바스티온 기지의 명칭을 쇼랍으로 바꿨다. 몇 해에 걸쳐 탈레반의 기지침투 시도를 막아왔으나 정작 기지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지 내 대부분의 건물과 막사는 비어있는 채로 방치됐고 최첨단 기지외곽 방어시설에도 녹이 슬어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바스티온 기지의 전 주둔군 사령관인 알리샤가이 대령은 아프간 군이 맡은 임무만 제대로 수행했어도 내부 조력자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탈레반이 기지 내부까지 침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지의 문제점을 지적한 미군의 입장은 달랐다. 미군은 헬만드 지방 내에서 탈레반이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음에도 아프간군이 철수를 미뤘다는 것이다.

▲파퀴흐 장군은 식량과 탄약 예산을 가로챈 혐의로 체포됐다(사진=ⓒ게티이미지)

​군단 지도부의 부패도 만연한 상황이었다. 2015년에는 전 사령관이 수천 명의 유령병사를 만들어 이들에게 지급된 급여를 가로채 보직해임되는 사건도 있었고, 후임 사령관으로 임명됐던 파퀴흐 장군 또한 식료품과 탄약에 배정된 예산을 가로챈 일로 체포됐다. 파퀴흐 사령관 재직 당시 군단 내 다수의 야시경 장비와 레이저 타겟 포인터가 사라진 뒤 탈레반이 암시장에서 이를 사들여 사용한 일도 있었다.

4년간의 재직기간 동안 탈레반으로부터 단 한번의 공격도 받지 않았던 알리샤가이 대령은 바스티온 기지에서 벌어진 일은 부패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후임 사령관이 사령관이 될 재목이 아니며, 정치적 연줄을 통해 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고 밝혔다.

아프간 군이 이번 탈레반의 공격으로 입은 피해는 23명의 사망자에 국한되지 않았다. 미군은 이번 공격을 계기로 내부조력자에 의한 위협을 이유로 아프간 군에 대한 군사고문과 병력훈련을 중단했고, 아프간 군과 접촉 시에는 직접적인 만남 대신 전화통화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꿨다.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