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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범죄(Homicide)
英 범죄의 대부가 말하는 범죄의 '미학'
2019-06-26 18:29:55
조현
▲범죄자였던 87세의 프레디 포먼은 은퇴했으며, 런던의 해턴가든의 강도 사건에 거의 가담했었다(사진=ⓒ위키미디어커먼스)

[라이헨바흐=조현 기자] 영국 법 역사상 가장 대담한 강도 사건을 벌인 프레디 포먼의 이야기가 전해져 눈길을 끈다.

프레디 포먼(87)은 스릴감과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 포먼이 속한 고령의 강도 집단은 모두 60세가 넘었으며 사건은 2015년 부활주 동안에 발생했다. 

도둑들은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타고 내려간 다음 다이아몬드 드릴을 사용해 20인치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었다. 이 사건은 영국 법 역사상 가장 큰 강도 사건이라 불린다.

 

범죄의 대부

포먼은 자신을 '영국 범죄의 대부'라고 칭하며 1983년 런던 동부의 증권회사인 시큐리티 익스프레스에 침입한 방법을 묘사했다.

부활절 주간 월요일 포먼을 포함한 5명의 무장한 도둑이 아일랜드 억양을 흉내 내며 경비원 한 명의 눈을 가리고 의자에 묶었다. 도둑들은 금고의 일련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콧구멍에 라이터 기름을 넣고 불을 붙이겠다고 협박했다.

인간적인 강도

이 도둑들은 현금 600만 파운드를 차에 싣고 달아났으며,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의 현금 강도 사건이었다. 포먼은 시큐리티 익스프레스의 강도는 아무도 인질로 잡지 않았고 심지어 경비원들에게 차를 주기까지 했으므로, 인간적이라고 주장했다.

포먼은 나이에 비해 체격이 다부졌고 대부다운 행동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런던을 위협한 악명 높은 쌍둥이 갱단인 크레이 형제의 행동 대장으로서의 과거 경력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포먼은 가끔 지팡이를 사용하여 걸었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활동적이었다. 그래도 두 번의 뇌졸증과 세 번의 심장 수술 탓인지 천천히 내려왔다.

살고있는 아파트는 비좁았지만, 포먼은 감방에서 10년 이상을 보낸 터라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아파트의 선반은 과거의 기념물로 가득 차 있다. 17세의 맨주먹 복서인 포먼의 흑백 초상화, 크레이 쌍둥이 형제의 초상화, 갱스터 영화들, 그리고 히틀러의 전기인 소설 등이 있다.

▲헤턴가든 강도 사건은 세기에서 가장 성공적인 강도 사건이라고 한다(사진=ⓒ픽사베이)

오래된 집단 갱단의 마지막 생존자

포먼의 일대기를 그린 2018년 다큐멘터리 '프레드'의 감독 폴 밴 카터에 의해 런던의 오래된 집단의 강력한 갱스터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불렸다. 밴 카터 감독은 포먼을 매력적이고 지혜롭고 친구들에게 충실한 사람이라고 묘사하며, 두려웠지만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포먼은 택시 운전사와 평범한 주부의 다섯 아들 중 한 명으로 태어났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시기는 16세로 당시에 가족은 런던 남부의 배터시에 살았으며 이웃에 폭력배가 살고 있었다.

포먼은 밍크 모피, 보석 및 의류를 훔치는 여성 강도단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18세가 됐을 때, 그의 어머니가 침실 벽장에서 연발 권총을 발견하자 "프레드 포먼, 결국 너는 올가미에 매달리게 될 거야"고 했다.

 

그는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육류 시장에서 일했지만, 쉽게 돈을 벌고 싶었다. 1950년대부터 세탁기와 TV를 훔쳤고 런던의 범죄 세계에 진입했다. 크레이 형제가 그를 고용한 1960년대였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며 포먼은 장의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크레이 형제와 연계된 것에 대해 아직도 후회한다.

크레이 형제를 위해 일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매혹적이었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 위치한 크레이 형제의 나이트클럽은 주디 갈랜드와 프랭크 시나트라 등 유명인도 종종 방문했다. 후에 포먼은 런던의 남부 지역을 장악하고 술집들을 소유했으며, 해밀턴 하우스라는 나이트클럽을 경매하기도 했다.

범죄 현장에서 폭력은 필요악이지만, 포맨에게 폭력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범죄에 가담한 주된 동기는 아내와 세 자녀였기 때문이다. 

포먼은 시큐리티 익스프레스 강도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없었지만, 도난당한 물건을 취급했기 때문에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각종 범죄로 총 16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는데, 교도소를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포먼은 건물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는 아들이 방문하지 않아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8명의 손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포먼의 갱단은 런던의 이스트엔드 거리를 운영했다(사진=ⓒ플리커)
[라이헨바흐=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