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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러(Terrorism)
美 자살 폭탄 테러범, 개심하고 수사 협조해 10년만에 석방
2019-06-26 18:29:55
유수연
▲자시는 911 공격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대가라고 믿었다(사진=ⓒ셔터스톡)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 뉴욕 지하철 폭탄 테러 모의로 2009년에 체포된 남성이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10년 만에 석방된다.

뉴욕타임즈의 콜린 모이니한에 따르면, 2006년 맨해튼 시내 커피 카트에서 일하던 고등학교를 중퇴한 자시는 친구에게 급진적인 이슬람 종교 지도자 살레 알 소말리의 오디오 테이프를 받았다. 

살레 알 소말리는 자시에게 폭탄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받아 뉴욕의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플러싱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자시와 두 친구가 당국의 위험인물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의심이 들자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법원 문서는 자시를 지하드 극단주의의 매력에 빠진 사람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자시는 개심해 미국 당국에 알 카에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친구에 대한 불리한 증언

자시는 알 카에다의 암살 표적이 되었고 그는 폭탄 테러에 대한 그들의 역할에 대해 그의 두 친구인 자레인 아메드자이와 아디스 메두냔에 불리한 증언을 해야 했다. 

또한 당국에 사촌 아마눌라 자시와 아버지 왈리드 왈리 자시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그 뒤에 지하철 폭탄 테러와 관련된 범죄로 감옥에 보내졌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자시는 1985년 파키스탄 동부에서 태어났지만 14세 때 뉴욕의 퀸스로 이사 왔다. 그는 플러싱 고등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졸업하지 못했다. 커피 행상으로 일하기 전에 식료품 상점과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했다.

▲자시는 알 카에다의 암살 표적이 됐다(사진=ⓒ셔터스톡)

셰이크 압둘라 엘-파이살의 추종자

자시는 20대 초반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알 카에다 지도자가 된 셰이크 안와르 알 아울라키와 살인을 교사해 인종적 증오감을 불러일으킨 죄로 영국 교도소에 수감됐던 자메이카 죄수인 압둘라 엘 파이살의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자시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 감행한 박격포와 자살 공격 비디오를 모두 보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또 911 공격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대가라고 믿었다.

2008년에 자시는 커피 가판 일을 그만두고 고등학생 동창인 아메드자이와 메두냐닌은 뉴와크에서 페샤와르로 날아갔다. 세 사람은 알 카에다 훈련 캠프에서 돌격용 소총과 로켓 추진 유탄 발사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중에 살레 알-소말리는 이 세 명이 자살 미션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하게 된다.

두 번째 훈련 캠프에서 아지즈는 매니큐어 제거제, 정제 버터, 밀가루, 과산화수소 및 염산을 같은 흔한 가정용 재료로 폭탄을 만드는 법을 훈련받았다.

2009년 콜로라도에 머무르면서 자시는 기폭 장치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베어산주립공원에서 만난 세 사람은 지하철에서 자살 조끼를 착용하기로 했다. 혼잡한 시간에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깃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9/11 공격 추모일 이후 자살 폭탄 테러 계획

이 공격은 9/11 테러 추모일 다음 날로 계획되었지만 당국이 자시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공격을 연기했다. 그리고 자시는 그 해 9월 12일에 콜로라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으나 일주일 후에 체포됐다.

자시는 처음에 거짓말을 했고 체포된 후 그를 취조한 FBI 요원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자시는 2010년 2월에 생각이 바뀌어 당국에 협조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찰은 자시가 고급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자시는 당국에 협력함으로써 10년 후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진남색의 죄수복을 입어야 했던 자시는 수감 중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그는 체포됐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