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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美·日,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화해는 아직 '진행 중'
2019-05-28 17:21:13
유수연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장면(사진=ⓒ위키미디어커먼스)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미국과 일본 양측간 화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시에 원자 폭탄을 떨어트리고 3일 후 나가사키시에도 원자 폭탄이 투하된다. 이러한 원자 폭탄 공격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원인으로 추측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는 현재까지 핵무기가 사용된 유일한 사례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은 있지만,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는 아직 없다.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에 시작돼 1945년에 끝났다. 이 전쟁은 유럽에서 5월 8일, 태평양 지역에서는 핵폭탄 공격 직후인 8월 15일에 끝이 났다. 일본은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했다.

일본의 이 두 도시에 대한 폭격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세계적인 충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폭탄 공격은 미국과 소련 간의 무기 경쟁의 시발점이 됐고, 냉전 시대로 이어진다.

▲일본의 석양(사진=ⓒgoodfreephotos)

미국은 왜 핵폭탄을 사용했을까

폭탄 공격 이후, 미국이 도시들을 폭격하기로 선택한 이유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었다. 일각에서는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일본에 항복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과 소련군이 일본을 침공하면 이 폭탄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쨌든, 원자 폭탄은 대량 살상 무기로 한 도시 전체를 쓸어 버릴 수 있다.

강한 열과 압력, 방사능 낙진과 방사선은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 버린다. 원자 폭탄의 진원지의 경우, 열이 너무 심해서 일순간에 건물과 사람들을 하늘로 날려버린다. 그래서인지, 히로시마에 폭탄이 투하된 직후 6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있다.

방사능과 폭탄의 영향으로 그해 말까지 14만 명이 사망했을 뿐 아니라, 사망자는 수년 간 계속 늘어났다. 방사선 중독으로 인해 암과 질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명 손실 이외에 히로시마의 건물과 기반 시설도 파괴되었다. 진원지에서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건물은 현재까지도 보존돼 있는 '겐바쿠 돔'이며 히로시마의 재건은 그곳에서 완성됐다.

나가사키에서는 총 7만 5,000명이 사망했다. 폭탄은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만큼 파괴적이지는 않았다. 일본이 폭탄 공격을 받은 이후에 항복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지만,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1945년 8월에 소련의 침략이 임박했기 때문에 항복했다고 주장한다. 

또 많은 이들은 미국이 소련에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어서, 원자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종식은 수십 년에 걸쳐 강력한 경쟁 구도를 불러 왔다.

존 클레어는 "내가 처음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단지 원자 폭탄으로 인해 전쟁이 끝났다고 가르쳤다"며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은 냉전의 시작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관계 개선

미국과 일본은 여러 단계의 화해 과정을 거치면서 양국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폭탄 공격 이후, 미국은 일본에 주둔하면서 미국, 특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영향을 크게 받은 새로운 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시행하는 것을 도왔다.

국제전략문제 연구소(CSIS) 소장인 마이클 그린은 "일본 전문가들은 천황제도를 폐지하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새 헌법은 히로히토 천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본의 정치 구조를 민주화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일본에 있는 기지를 활용했다. 미국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기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수소 폭탄을 포함하여 어떠한 무기도 선택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은 또한 일본의 국내 소요의 진압을 도왔다. 

1980년대에  경제적 격차로 인해 화해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린은 "양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쟁자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화해 과정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균형은 다시 맞춰졌고, 미국은 일본의 수출가가 너무 낮아 일본 엔화 가치를 올리라고 일본에 압력을 넣었다. 화해 과정에서 여전히 입창 차이는 있으며, 양국의 화해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