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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범죄(Homicide)
치노 힐스 살인사건, 범인은 무죄일까?…'DNA 감식으로 판결 뒤집힐 수 있어'
2019-05-28 17:25:21
유수연
▲쿠퍼가 수감 중 탈옥하고 3일 후, 치노 힐스의 한 주택에서 피해자 네 명이 칼로 난도질당한 채 발견됐다(사진=ⓒ123RF)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 치노 힐스에 위치한 주택에서 네명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남성 '케빈 쿠퍼'가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DNA 감식 결과가 새로운 증거로 채택되면 쿠퍼에 대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케빈 쿠퍼는 198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 버나디노 카운티의 치노 힐스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 네 명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27세였던 쿠퍼가 치노남성형무소에 수감 중 탈옥하고 3일 후, 치노 힐스의 한 주택에서 피해자 네 명이 칼로 난도질당한 채 발견됐다. 더그(41)와 페그 리엔(41) 부부, 그들의 10살 난 딸 제시카, 그리고 11세 소년 크리스토퍼 휴스가 리엔의 자택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피해자들을 발견한 사람은 크리스토퍼의 아버지로, 그는 피해자들이 칼로 난도질당했다고 진술했다. 리엔 부부의 9세 아들인 조슈아는 목이 베이고 머리를 얻어맞았지만 살아남았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 대서특필됐고 '치노 힐스 살인사건'으로 알려졌다. 

이후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쿠퍼는 5개월간의 재판 끝에 유죄를 선고받았고, 살인 방식이 특히 잔인했던 점이 고려돼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쿠퍼는 네 건의 살인사건 외에도 피해자 부부의 아들인 조슈아의 살인미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쿠퍼는 무죄인가? 

쿠퍼는 모범 시민은 아니었다. 강도 혐의로 데이비드 트라우트만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3년간 복역한 바 있고, 문서를 조작해 경비가 허술한 형무소에서 탈옥하기도 했다. 치노 힐스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뒤에야 경찰은 그의 실명을 파악했고,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탈옥과 납치, 강간 혐의로 수배 중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치노 힐스 살인사건의 경우 쿠퍼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쿠퍼는 순전히 정황상 증거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샌 버나디노 카운티 검찰 데니스 고트마이어는 쿠퍼를 리엔 일가족 살인사건과 연관시킬 직접적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살인 현장과 쿠퍼가 탈옥 후 숨어 지내던 인근 주택에서 발자국 일부를 발견됐고, 리엔 부부 소유인 스테이션왜건에서 형무소용 담배 흔적이 발견된 것이 전부다. 

재판이 5개월 간 이어지는 동안 141명의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했다. 증인이 이처럼 많았기 때문에 서로 엇갈리는 증언이 이어졌고 생존자인 조슈아의 증언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 재판이 혼란을 겪었다. 

조슈아는 병원 관계자와 경찰에게 각기 다른 진술을 했다. 조슈아는 당초 부보안관과 사회복지사에게는 세 명의 백인 남성이 공격했다고 진술했으나, 한 시간 후 보안관에게는 라틴계 남성 세 명이 공격했다고 말을 바꿨다. 

또한 조슈아는 TV에서 쿠퍼의 사진을 본 후 또 다른 보안관에게 쿠퍼가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했다. 동영상으로 녹화된 진술에서 조슈아는 범인이 '벽에 비친 그림자'였다고 진술했다. 

몇 시간에 걸친 반대심문과 5일 간의 법정 심문이 이어진 재판 내내 쿠퍼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줄곧 결백을 주장했다. 

▲DNA 감식 결과가 새로운 증거로 채택되면 쿠퍼에 대한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사진=ⓒ123RF)

DNA가 쿠퍼의 결백을 밝혀줄 것인가? 

쿠퍼 사건은 지역 사회의 큰 관심사이니 만큼, 억울한 누명을 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상원의원 카말라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주 정부가 케빈 쿠퍼 사건에서 DNA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CBS 뉴스는 1999년 쿠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쿠퍼는 편지에서 DNA 감식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결백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DNA 결과가 나온 후에도 쿠퍼에 대한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다. 

치노 힐스 사건에는 이 외에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다. 우선 쿠퍼가 동시에 세 개의 무기를 사용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이 납득가기 어렵다. 검찰 측은 쿠퍼가 양손잡이라서 무기 세 개를 휘두르는 것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용의자를 가리키는 증거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진술 과정에서 이 증거는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애나 로퍼라는 한 여성이 폭력 전과가 있는 자신 남자친구의 작업복이 온통 피범벅이 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넘겼으나 증거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쿠퍼가 유죄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추가 과학 감식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리 실버맨 판사는 "쿠퍼가 범인이거나 경찰이 누명을 씌웠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쿠퍼는 브라운 주지사에게 자신의 사형 집행 연기와 치노 힐스 살인사건 재수사를 요청했다. 

주지사 측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뉴욕타임스(NYT)가 쿠퍼 사건을 심층 보도한 후에야, 진지하게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하는 답장을 보냈다.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