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국제 테러(Terrorism)
IS 고문 부대 '비틀즈'…남성 27명 참수·고문 혐의
2019-05-14 13:08:14
김지연
▲ 스페인 사진기자 리카르도 비야누에바는 '비틀즈'라는 단체에 인질로 잡혔다(사진=ⓒ셔터스톡)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 IS의 고문 부대로 활동한 통칭 '비틀즈'의 잔혹한 실태가 공개돼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전문매체 옵저버의 쿠엔틴 솜머빌에 따르면, 2011년 스페인의 사진 기자 리카르도 비야누에바가 바샤르 알 아사드를 반대하는 시민 봉기를 취재하기 위해 시리아를 방문했다. 

2013년 시리아 내전이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리아 반군은 그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였고, 결국 IS에 인질로 잡혔다.

비야누에바를 납치한 범인들은 웨스트 런던 출신 IS 고문부대로 '비틀즈'라 불렸다. 이들은 모하메드 엠와지, 아인 데이비스, 알렉산다 코티, 엘 샤피 엘셰이크로 구성된 4인조로 잔혹한 고문과 살인으로 악명 높았다. 

현재 IS 고문부대 비틀즈는 와해됐다. 엠와지는 2015년 락까에서 드론으로 암살됐으며 데이비스는 테러리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터키의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티와 엘셰이크는 작년 1월 쿠르드 민병대에 의해 체포된 후 북부 시리아의 한 곳에서 비밀리에 미군에 의해 두꺼운 경비망 아래 독방에 감금됐다.

이 네 명은 모두 합쳐서 27명의 남성 참수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코티와 엘셰이크는 고문에 참여한 것을 부인하고 있다.

비야누에바는 8개월간 IS에 붙잡혀 있어야 했고, 스페인 정부가 몸값을 지불해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개인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돌아갔으며 한 달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끔찍한 고문 기억

비야누에바는 자유를 되찾은 지 4년이나 지났지만, 후유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팔의 상처가 나았음에도 여전히 통증을 느꼈고, 불안함 탓에 똑바로 누워 잘 수 없었다. 

당시 약 19명의 포로는 서로 족쇄로 얼기설기 묶여 있었고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포로 중에는 인권 운동가 데이비드 헤인즈, 앨런 헤닝, 미국인 제임스 폴리, 압둘라흐만 피터 카시그, 스티븐 소틀로프 등이 있었다. 

비틀즈는 포로에게 그들의 친구를 처형한 동영상을 보여주곤 했다. 매일같이 19명의 포로는 함께 묶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문을 당했다. 

▲ 코티와 엘셰이크는 IS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솜머빌의 질문에 대답을 거부했다(사진=ⓒ123rf)

솜머빌과 비야누에바가 인터뷰한 '비틀즈'

"비틀즈는 국가의 엘리트로 자칭했으나 락까가 친정부 세력에 의해 탈환됐을 때 제일 먼저 도망친 이들이다."

작년 7월 시리아인 프로듀서가 주선한 회의에서 BBC 뉴스 특파원 솜머빌과 만나 비야누에바는 이처럼 말했다. 솜머빌은 비야누에바를 인터뷰한 것뿐만 아니라 수감된 비틀즈 멤버를 직접 만나고 싶어했다. 

그들은 코바니(Kobani) 마을로 가 해당 지역의 쿠르드족 부대와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야누에바는 다시 고문자들과 대면하게 됐다. 그곳에서 코티와 엘셰이크는 시리아를 뒤덮은 혼란 속에서 IS로 피신하려 했을 뿐이고 인질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솜머빌은 그들이 거만했고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았으며, 마치 부당한 일을 당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엘셰이크는 물고문, 십자가 처형 및 여러 명의 인질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고 코티도 전기 고문을 포함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들은 외국 기자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관심 있었다. IS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솜머빌의 질문에는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