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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스페인, '프랑코 독재 시대' 과거사 청산 박차
2019-05-28 17:34:17
허서윤
▲프랑코 군부는 3년 내전과 독재 정권을 통해 수많은 반인륜 범죄를 자행했다(사진=ⓒ펙셀스)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 스페인이 과거 프랑코 독재 시대의 잔재를 뿌리뽑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스페인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내전에 휩싸였다.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공화국 정부가 탄생하자, 프랑코 장군이 군부를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 3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30만 명에서 60만 명이 사망하고, 25만 명에서 50만 명이 해외로 망명했다. 전체 사망자의 4분이 3은 프랑코 군부의 소행이었다.

 

내전이 끝난 지 80여 년이 흘렀지만, 사법 정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내전과 독재에 뒤따른 반인륜 범죄로 희생된 피해자는 많은데 기소된 가해자가 없다.

 

프랑코 독재정권 시절에 자행된 대표적인 반인륜적 범죄는 유아 납치다. 프랑코 정권은 프랑코가 사망한 1975년까지 좌파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3만 여명에 달하는 유아를 납치했다. 유아 납치는 광범위한 인신매매 사업으로 확장되어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2012년 4월 노수녀 마리아 고메스가 무려 30만 명이 넘는 신생아를 매매한 혐의로 기소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프랑코 정권이 벌인 잔혹행위는 국제법 관할에 속한다. 따라서 희생자들은 '보편적 관할권' 아래 사건을 외국 법정에 회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스페인 정부가 비협조적이었다. 스페인 법조계는 과거사를 조사하는데 큰 관심이 없었다. 2000년을 전후로 40여 건에 달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기각한 점만 봐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국제엠네스티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스페인 법무장관은 희생자들이 재판정에 서지 못하도록 차단하는데 매진(?)했다.

 

지난 1977년 제정된 사면법도 정의 구현에 발목을 잡았다.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스페인의 좌·우 진영은 '형제의 공존'을 명목 삼아 '망각협정(Pacto de Olvido)'을 체결했다. 프랑코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덮기로 한 것이다. 정치범들은 대거 풀려났고, 인권유린을 자행한 가해자들을 처벌할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데 겉으로는 평화와 공존의 길을 걷고 있던 스페인에서 2000년대 들어 과거사 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2년 좌파정당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페롤에서 프랑코 기마동상을 박물관으로 옮긴 것을 계기로 과거사 청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페롤은 프랑코의 출생지로 우파들에겐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2004년 9월에는 프랑코 독재정권 및 내전의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한 '과거사진상조사범정부위원회'가 출범했다. 2006년에는 '기억의 해'로 선포하는 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이듬해인 2007년에 과거사 청산작업의 핵심인 '역사 기억법'이 제정됐다. 최대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내전 실종자의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됐고, 프랑코의 동상 제거 등 독재 흔적 지우기도 시작됐다.

▲2004년 9월 스페인에 과거사진상조사범정부위원회가 출범했다(사진=ⓒ펙셀스)

올해 스페인 정부는 국립묘역 '전몰자 계곡'에 내전 희생자들과 함께 묻혀 있던 프랑코의 유해를 이장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사회적 반발이 극심했다. 프랑코에 뿌리를 둔 국민당 등 우파·극우파 정당들은 위헌 제소 등도 불사하겠다며 버텼다. 당시 현지 여론 조사에서도 41대 39로 찬반이 팽팽했다.

 

이제야 꿈틀대기 시작한 스페인의 과거사 청산이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는 없다'는 우파들이 목소리를 잠재우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 길이 독재 흔적 지우기를 뛰어넘어 사법 정의를 실현하고 희생자들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길이기를 기대해 본다.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