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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스네이크'라 불리던 천재 마피아 두목의 말로
2019-05-03 14:43:50
김주현
▲카마인 존 페르시코는 배신을 일삼아 조직의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다(사진=ⓒ플리커)

[라이헨바흐=김주현 기자] 콜롬보 마피아 두목 '카마인 존 페르시코'가 수감 생활 중 비참한 최후를 맞아 다시 한번 회자되고 있다.

페르시코는 배신을 일삼으며 조직의 최고 자리까지 올라 '스네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불멸의 존재'라고도 불렸던 그는 결국 체포돼 139년형을 받고 미국 연방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 중 쓸쓸히 숨을 거뒀다.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는 마피아 두목

미국 뉴욕타임스(NYT) 기자 셀윈 랍에 따르면, 마피아계에서는 누구도 감히 페르시코의 면전에서 그를 스네이크라 부르지 못했다. 대신 그는 키가 167cm밖에 되지 않아 마피아 동료들은 그를 '꼬맹이'라고 부르곤 했다고 알려졌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콜롬보 마피아 조직을 추적했던 미국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지하 세계 범죄자 중 페르시코가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페르시코는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지능과 잔인함으로 두각을 나타내 17세에 이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뉴욕 브루클린 일부 지역에서는 하위문화 세계에서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기며 우상화되기도 했다.

10대 때 이미 청부 살인업자로 활동

법률회사 속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시코는 10대 때 이미 청부 살인업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세가 됐을 때 살인 혐의로 체포됐지만,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고 남을 배신하는 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냉혈한인 페르시코는 곧 콜롬보 마피아 조직에서 최고 자리에 올랐다.

미국 당국에 따르면, 페르시코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마피아 전쟁에 영향력을 미치고 콜롬보 조직의 범죄 활동을 관리했다. 페르시코가 두목으로 있을 때 콜롬보 조직은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며 협잡, 도박, 고리대금, 마약밀수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발소 5총사

미국 경찰에 따르면 페르시코 자신의 손으로 또는 지시를 내려 20명을 살해했다. 그는 감비노 범죄조직의 무시무시한 두목인 앨버트 아나스타시아 살해에도 가담했다. 경찰은 페르시코가 갈로 형제들과 결탁해 암살팀을 꾸렸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아나스타시아가 1957년 10월 25일 맨하탄에 위치한 한 호텔 이발소에서 면도하던 중 살해돼, 후에 이 암살팀은 '이발소 5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아나스타시아 살해는 당시 감비노 조직의 2인자였던 카를로 감비노의 사주로 콜롬보 조직의 대부였던 조셉 프로파치의 동의를 얻어 실행에 옮겨졌다. 카를로 감비노와 조셉 프로파치는 아나스타시아가 마피아 세계에서 지나치게 힘이 세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나스타시아의 살해와 관련해 범인은 끝내 체포되지 않았지만, 페르시코는 1986년 징역형에 처해지기 전 친척에게 자신이 아나스타시아를 살해했다고 말했다.

▲페르시코는 139년형을 받고 미국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사진=ⓒ플리커)

함께 활동하던 5총사 멤버마저 살해 시도

페르시코는 아나스타시아 살해에 같이 가담했던 갈로 형제들 중 한 명도 살해하려 했다. 1961년 8월 20일 브루클린에 위치한 사하라클럽에서 두 명의 남성이 갈로를 밧줄로 목조르던 도중 경찰이 진입하는 바람에 살해가 실패로 돌아갔다.

경찰 관계자들은 페르시코가 암살단 활동을 다시 시작하자며 갈로를 클럽으로 유인해 살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페르시코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갈로가 증언을 거부해 경찰은 페르시코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페르시코는 잔인한 범죄 행위를 통해 수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1986년 갈취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면서 결국 운명의 신이 그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을 변호하다

페르시코는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단을 선임하지 않고 직접 변호를 맡았다. 배심원 판결이 내려지는 재판에서 개인적인 매력으로 배심원단을 사로잡으려 한 것이다. 

검찰 측은 녹음 테이프와 마피아 하급 조직원의 증언 등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페르시코는 이러한 증거들이 모두 불법적으로 취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은 증인으로 나서지 않아 검찰 측이 반대심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능도 발휘했다.

페르시코는 재판정에서 유능한 변호인이기 보다 배심원단의 동정을 구하는 평범한 남성의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페르시코의 전략에 넘어가지 않고 그에게 100년형을 선고했다. 이전에 받은 징역형과 합치면 페르시코는 139년의 징역형을 살게 된 것이다.

▲페르시코는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마피아 전쟁에 영향력을 미치고 콜롬보 조직의 범죄 활동을 관리했다(사진=ⓒ플리커)
[라이헨바흐=김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