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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UN 국제 재판소, 캄보디아 킬링필드 주동자 2人 유죄 판결
2019-05-28 18:23:25
유수연
▲크메르 루주 대부분은 국제 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사진=ⓒ플리커)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 캄보디아 대학살, 이른바 '킬링필드'의 주동세력으로 악명높은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지도자 2인이 마침내 국제 재판소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캄푸치아 공산당의 무장 군사조직은 캄보디아에서 무차별적인 처형과 고문을 일삼았고 잘못된 농업개혁으로 심각한 기아를 야기했다. 아울러 의약품 부족으로 수천명이 학질에 걸려 사망했다. 생존한 크메르 루주 지도자 2인, 누온 체아(Nuon Chea)와 키에유 삼판(Khieu Samhan)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UN 소속 캄보디아 특별재판소는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를 통치하던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베트남인과 무슬림 참 소수민족들을 약 170만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일원 중 한명은 바로 크메르 루주 고위직이었던 누온 체아다(사진=ⓒ위키미디어커먼즈)

크메르 루주 지도자 종신형 선고

이전 재판에서도 같은 형을 받았던 체아와 삼판은 제네바 협정을 철저히 어기고 여러 비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데에 있어 이전에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체아는 폴 팟의 부관이자 정치 전략 수석이었고 삼판은 크메르 루주 집권 당시 국가 원수였다. 두 사람 모두 북부 캄보디아에서 수십년 동안 자유로운 삶을 살다 2007년에 체포됐다.

2014년 비인도적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들은 당시 정권에서 높은 위치에 있던 것은 맞지만 잔학 행위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삼판은 2014년 판결이 내려졌을 때, 자신이 같은 민족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발언했고 실질적으로 세력을 이용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캄보디아의 계급 없는 사회, 0년

폴 팟과 그의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이끈 크메르 루주가 공포 정치 '0년(Year Zero)'을 시작하기 위해 수도 프놈 펨을 침공한지 40년이 지난 후에야 대학살 범죄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졌다. 

그들의 목적은 캄보디아에 계급 없는 농경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이때 사람들은 안경을 썼다거나, 프랑스어를 하거나, 발레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처형되곤 했다.

크메르 루주 일원들이 원하는 이데올로기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었다. 삼판은 소르본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체아는 태국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잔혹한 고문 

체아와 삼판은 인민들에게 댐과 도랑을 짓게 하는 등 강제 노역을 강요한 혐의로 형을 선고 받았다. 

또한, 비닐봉투로 질식시키고 발톱과 손톱을 뽑아내는 등 여러 형태의 고문을 자행했으며 무슬림들에겐 돼지고기를 먹이고 정부 관료에겐 전화선으로 전기고문을 하기도 했다. 

이번 재판은 캄보디아인들에게 대학살의 공포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됐다. UN재판소는 체아와 삼판을 기소하는 10년 동안 미화 3억달러가 사용됐다. 이 기간 재판소는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검토했으며 증인 수백명을 인터뷰했고 크메르 루주가 집단 처형장을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대한 증언을 수집했다.

▲캉 켁 루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 투올 슬렁을 운영했던 사람이었다(사진=ⓒ위키미디어커먼즈)

감옥에 갇힌 또 한 명의 크메르 루주의 인물은 투올 슬렁 감옥의 수장이자 덕(Duch)으로 알려진 캉 켁 루다. 이 감옥에서는 1만 2,000명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 소수의 수감자만 살아 감옥을 나올 수 있었다.

한편, 크메르 루주의 간부이자 캄보디아의 수상으로 30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해 왔던 훈 센(Hun Sen)은 처음부터 UN재판소의 설립을 반대해 왔다. 그는 1998년 키우 삼판과 네온 추아가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꽃다발과 함께 환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훈 센은 재판소가 캄보디아 사건의 일을 어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의 낮은 직책으로 일했던 인물들 역시 처형을 할 때까지 재판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크메르 루주 잔당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 정당의 수장들을 감옥으로 보냈으며 서양 방식의 민주주의는 캄보디아의 독립에 위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라이헨바흐=유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