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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러(Terrorism)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현혹"…IS의 악명높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2019-06-26 18:29:55
김지연
▲북동부 시리아에서 전투 중에, IS의 전사이자 선전 비디오 제작자인 모하메드 칼리파는 인터뷰에서 IS에 가입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사진=ⓒ위키미디어커먼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 이슬람국가(IS) 선전 영상·오디오 나레이션을 맡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테러리스트 집단에 끌어들이는 목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의 정체는 바로 모하메드 칼리파(Mohammed Khalifa)로 선전 영상 '전쟁의 불꽃'의 나레이터였다. 그는 이를 시작으로 이슬람 국가의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영상과 라디오로 전파하는 익명의 사상가가 됐다.

전쟁의 불꽃은 2014년에 제작된 악명 높은 IS 선전 영상으로 시리아 군인들이 총에 맞아 죽기 전,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모습을 담고 있다.

▲칼리파는 인터뷰 전 또 다른 전투에서 시리아 민주군에 포로로 잡혔다(사진=ⓒ위키미디어커먼스)

테러전문가들은 유창한 영어로 된 그의 나레이션이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 킹스 대학의 국제 급진화 연구센터의 찰리 윈터 선임연구원은 칼리파의 목소리는 IS가 사용해 온 영어 음성 중 가장 잘 녹음된 것이라고 말했다.

칼리파가 시리아에서 생포된 뒤, 수사팀은 법의학 오디오 전문가 3명에게 칼리파의 TV 발언과 전쟁의 불꽃 영상의 목소리를 비교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3명의 전문가 모두 칼리파가 해당 영상의 내레이터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일치했다.

콜로라도 덴버 국립 미디어 법의학 센터의 오디오 전문가인 카탈린 그리고라스(Catalin Grigoras)와 제프 M. 스미스는 2014년 비디오에서 미확인 내레이터도 칼리파일 가능성이 134배 더 높다고 결론지었다. 

 

마찬가지로 로버트 C. 몬타나 주립대학의 음성인식 전문가인 로버트 C. 마허(Robert C. Maher)는 두 오디오 클립에서 특정 단어의 발음을 스펙트럼 프로그램을 통해 비교한 결과, 음색·억양·발음 등이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쟁의 불꽃 동영상이 공개된 2014년 9월 19일은 IS의 결정적인 시기였다. 당시 테러 집단의 칼리프 영토는 생긴 지 3개월도 채 안된 시기였고, 짧고 간결한 동영상을 만들고 있었다.

몰입감 있는 영상

전쟁의 불꽃은 고프로 카메라로 촬영된 55분짜리 영상으로 IS에서 만든 몰입감 있는 첫번째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병사가 참호를 파고 감시작전을 벌인 뒤 적을 공격해 제압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영어로 내레이션을 했기 때문에 이 동영상은 서구의 IS 신병을 모집하는 신호탄이 됐다.

 

마르고 왜소한 35세의 칼리파는 캐나다 국적의 시민권자로, 에티오피아 혈통의 부모로부터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에서 태어났다. 그는 토론토에 있는 세네카 대학에서 컴퓨터 시스템 기술 학위를 취득했으며 IBM의 '켈리 서비스'를 포함한 업체에서 정보 기술 전문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가족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후 캐나다인처럼 영어를 말하는 법을 배웠으며 유튜브를 통해 IS의 전쟁 비디오를 보고 IS에 빠져들었다고 진술했다.

겨우 일반 사병일 뿐

칼리파는 미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의 참수나 요르단 조종사의 화형과 같은 소름 끼치는 비디오 뒤에서 숨은 IS의 일반 사병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포로들의 익사 장면을 녹화하는데 수중 카메라를 사용하는 등, 자신이 나레이션한 장면의 실제 촬영에는 활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칼리파는 자신의 일은 녹음실에 엄격히 국한돼 있으며 목소리가 주된 장비라고 말했다.

▲칼리파는 고프로 카메라를 이용해 영상을 만들어 IS에 대한 몰입감 있는 열정을 드러냈다. (사진=ⓒ픽사베이)

칼리파는 IS에서는 반열에 오른 유명인사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시리아 북부에서 포로로 감금돼 있는 수백 명의 IS 전사들처럼 일반 포로로 전락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데, 텐트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떠날 수는 없다.

항복 한 달 후, 칼리파의 미래는 여전히 매우 불투명하다. 그의 본국인 캐나다는 감옥과 수용소에서 자국민의 송환을 거부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전장의 증거가 법정 소송에서 가치가 없어져 장기 형량을 내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편, 칼리파는 아직 캐나다 당국의 방문이나 외교적 지원도 받지 않았다. 로열 캐나다 마상 경찰과 캐나다 외교부 모두 그의 사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그 자신도 칼리프 권력의 정점에서 결혼했던 아내와 두 아이의 행방을 모른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