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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범죄(Homicide)
진실을 위해 전장으로…아프간 방문 기자들과 탈레반 공격
2019-05-29 00:04:15
허서윤
▲아프가니스탄의 자고리 지구에서 일어난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한 기자단이 이 지역으로 왔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 탈레반 횡포의 온상을 알리기 위해 위험으로 뛰어든 기자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로드 노드랜드는 기자들이 만든 소규모 그룹으로 작년 11월 11일 일요일에 정부가 어떻게 탈레반을 상대하는지에 대해 1인칭 시점의 이야기를 싣고자,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 지역에 있는 자고리 지구의 수도 상-이-마샤로 떠났다.

밴드를 몸에 감고 목적 없이 거리를 떠돌던 정예병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기자들이 상-이-마샤에 도착했을 때 보게 된 광경은 붕대를 감은 특공대원들이 완전히 절망에 사로잡혀 목적 없이 거리를 떠도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도망가려고 했던 정부 관료들은 탈레반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기자들이 상-이-마샤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30명의 정예병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기자들이 도착하기 전, 탈레반은 30명의 아프가니스탄 정예병을 살해했다. 총격전으로 인해 다른 10명은 상처를 입었다. 소형 오픈 트럭이 줄지어 상-이-마샤에 있는 정부 건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불안에 떠는 거주민들은 눈을 벗어나 건물 뒤 편에 주차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군인과 경찰들은 쓰러져 있는 자신의 동료를 트럭으로 태웠고, 이불이 깔린 바닥에 눕혀 담요을 덮어주었다.

시골 지역을 방어

놀드랜드와 그의 동료들이 마을을 방문하기 4일 전, 정예병들은 자고리 지역으로 날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안전한 시골 지역인 이곳을 탈레반으로부터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자고리는 하자라 시아파 소수민족의 고향이며, 탈레반의 구속을 당하는 곳이다. 자고리에 사는 60만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도로는 포장이 돼 있지 않을뿐더러, 전기도 사용하지 못하는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과수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몬드와 사과나무 그리고 계단식 밭에서 자라는 밀이었다.

이렇게 고립된 입지 조건은 자고리 지역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이런 평온한 분위기가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범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거주민은 강도나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이 도시의 교육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여자아이가 학교에 가며, 아프가니스탄 평균보다 더 높은 남자아이들의 교육 수준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여자아이들은 이곳 자고리에서 아주 흔한 광경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탈레반의 장악으로 인해 이 지역은 다른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부터 고립됐으며 탈레반은 모든 도로를 폐쇄하기도 했다. 자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장거리를 가야 하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뇌물을 주어야 했다. 원래 미화 50달러였으나, 탈레반이 자고리를 점령하고 나서 7배가 뛰었다.

천 명의 탈리반

천 명의 숫자에 달하는 탈레반은 기자들이 나타나기 일주일 전 다년간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자고리 지역을 3방향으로 공격했다.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번도 점령하지 못한 지역을 차지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공격이 시작된 수 시간 동안, 50명의 아프가니스탄 정예병들은 전부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 죽임을 당했다. 

민병대를 이끌다 상처를 입은 채로 전장에서 돌아온 나제르 후세인에 의하면 24시간 전, 50명의 경찰관과 민병대들 역시 살해당했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정부가 조처를 하지 않으면, 자고리는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홋콜지역

장이 서는 마을인 홋콜은 상-이-마샤에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양측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인 장소였다. 작년 11월 첫째 주에 탈레반은 홋콜에 있는 지방 민병대가 무장해 지키고 있던 8개의 전초 기지를 급습했다. 

사상자 중에는 반러시아 지하드 시대부터 유명했던 하자라의 대장 젠 하비불라 바시도 있었다. 그는 전투가 일어난 첫날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3명을 포함한 그의 무장 병력 30명은 행방불명 됐다. 현재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바시의 개인 경호원인 사이드 후세인 역시 전투 중 도망쳤다. 기자들이 타고 있던 소형 트럭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번 일에 대해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표현했다. 

후세인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의 가족 20명이 이번 전투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에 몹시 분개했다.

군인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상-이-마샤의 사람들은 군인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카불로 데려가 주길 기다렸으며, 그중에는 아지지 라만이라는 정예병도 속해 있었다. 그는 총상으로 인해 장기에서 피가 나고 있었으며, 수혈을 받는 중이었다. 

라만을 치료하던 의사 라마잔 하시미는 자신이 수술을 집도할 수도 있지만, 아주 위험하다고 밝혔다. 몇 시간 후, 헬리콥터가 도착하지 않자, 하시시는 라만의 신장과 비장을 드러내야 했다.

일요일 아침이 밤이 되고, 홋콜로부터 절대 버틸 수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탈레반은 밤이 찾아오자 홋콜을 다시 공격하려고 했으며, 홋콜과 근처 마을로부터 도망치던 일가족들은 몇 시간 후, 탈레반이 상-이-마샤까지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고리 지구의 총재 자파 샤리프는 후세인 대장이 6명의 부하와 함께 차를 타고 전장으로 뛰어드는 동안 숨어 있었다. 후세인은 홋콜이 무너지면 나머지 자고리 지역도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노드랜드와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상-이-마샤에서 도망쳐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속을 걸어야 했다. 길은 한군데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와 덤프트럭에 치이기도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이 비극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헬리콥터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라이헨바흐=허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