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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러(Terrorism)
디지털 테러리스트 '주나이드 후세인'의 시작과 최후
2019-07-30 17:24:58
김지연
▲2015년 라카 공습에서 ISIS의 회원이자 해커인 주나이드 후세인이 사망했다(사진=ⓒ플리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 지난 2015년 8월 24일,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S) 서열 3위 지도자 '주나이드 후세인'이 시리아 라카의 한 주유소에 멈췄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미군에게 발각됐다는 발견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미군은 즉시 무인 드론을 보내 그의 차량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했고 결국 후세인은 사망했다.

해커에서 킬러로

약 10년 동안 후세인은 해커에서 살인자로 변모해 테러범으로 생활하며 개인 정보를 온라인에 입력하지 않았고 인터넷을 통해 어떤 것도 구매하지 않는 등 치밀하게 행동했다.

마침내 2015년, 래퍼가 되길 꿈꾸던 파키스탄 출신 소년에서 테러범이 된 21세 후세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아부 후세인 알-브리타니라는 명성을 얻었고, ISIS가 장악한 시리아 동부의 선전 선동가로 활약하며 영국 출신 ISIS 멤버 사라 존스와 결혼했다. 입양 아들은 '인간 방패'로 활용해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미국이 절실하게 원한 테러범

시리아에 본거지를 두고 활약한 파키스탄-영국 출신 테러범인 후세인은 매주 새로운 계획을 발표해 미 법무부와 FBI의 관심을 끌었다. 2015년 당시 그는 법 집행 기관이 본 것 중 가장 많은 글로벌 사이버 공격 계획을 만들어냈다.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한 코소보 출신 해커를 고용해 미국 군인에 대한 공격을 수행할 계획을 짜기도 했다.

▲후세인은 FBI가 절실하게 잡기를 원한 테러범이었다(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팀포이즌

후세인이 해커로 활약한 것은 11세 때였다. 그는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해치려던 다른 플레이어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킹을 시작했다. 그는 해킹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구글을 검색했고, 온라인 해킹 포럼이나 튜토리얼 등을 읽은 다음 스스로 해킹을 실험해보기도 했다. 당시 해당 게이머에게는 해킹을 시도하지 못했지만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가장 싫어하는 해커가 될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게임을 즐기던 후세인은 13~15세 경에 급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카슈미르와 파키스탄 등에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동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등에 관한 웹사이트에 방문했다. 

이들의 활동은 후세인에게 큰 영감을 줬고 그는 친구들을 모아 해킹 그룹 팀포이즌(TeaMpoisoN)을 만든다. 팀포이즌은 독특한 해킹 스타일로 평판을 얻게 된다. 이들은 블랙베리나 NATO 등의 웹사이트를 공격해 파키스탄에 친화적인 메시지를 게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심지어 전 영국 총리인 토니 블레어의 계정을 해킹해 그의 주소록을 온라인에 게시하기도 했다.

▲후세인은 해킹 그룹을 결성해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 유명 인사의 웹사이트를 공격했다(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그러나 이런 공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2012년 9월에 체포돼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팀포이즌은 결국 사라졌지만 후세인이 서구 사회에 대해 느낀 분노는 더 깊어질 뿐이었다. 

그는 출소한 후 시리아의 ISIS를 찾아갔다. 시리아에서 그는 미래의 아내가 될 사라 존스를 만났다. 그는 ISIS의 온라인 선전에 가담했으며 트위터 아바타를 사용해 AK-47 소총을 든 모습 등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온라인 상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활용해 ISIS에 가담할, 그와 비슷한 청년들을 모집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집에 앉아 '콜 오브 듀티' 게임이나 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 임무를 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고 전했다.

결론

그가 시행한 테러 방법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후세인과 ISIS 테러리스트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사람들을 모집했다. 후세인은 디지털 지하드 세계의 주인으로서 이 세상이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등극했다. 

온라인 테러리즘은 미국이 적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이 미국인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것도 이전에는 볼 수 없을 만큼 대규모로. 특히 2006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 도구 트위터는 온라인 극단주의자들에게 전례 없는 힘을 실어줬다.

[라이헨바흐=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