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국제 범죄(International Conflict)
시리아 내전, 출구 없는 '미로'…작년 사망자 수 약 '36만명'
2019-05-03 09:47:16
장희주
▲시리아에서 바샤르 정부를 향해 교육, 고용, 의료 등의 기본 서비스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사진=ⓒ셔터스톡)

[라이헨바흐=장희주 기자] 시리아 내전이 약 8년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민간인 피해는 더욱 심화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2011년 시리아인들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자유 억압과 부패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 아랍 독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아랍의 봄' 시위가 아사드 일가의 부자 세습에 대해 불만이 팽배해 있던 시리아 국민들에게 불을 붙인 것이다. 장장 8년을 이어오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바샤르 대통령은 30여 년간 시리아를 철권 통치한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의 아들이다. 197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는 군부와 정보국을 동원해 정부 비판 세력을 억눌러왔다. 1982년 친(親) 시리아 세력 바트당 당원들을 암살한 혐의로 무슬림형제당 당원들을 학살한 사건은 하페즈가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힌다.

하페즈는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동생인 리파트를 집권세력을 보호하는 보안부대 책임자로 임명했다. 리파트는 다수의 군사작전을 통해 민간인 약 4만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페즈의 후계자는 원래 장남인 바실 알아사드였다. 하지만 바실이 1994년 다마스쿠스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33세 나이에 죽고, 2000년 하페즈까지 돌연 사망하자 차남인 바샤르가 권력을 승계한다. 바샤르의 두 동생인 마헤르와 마지드도 후계자 물망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헤르는 나이와 기질이 문제가 되었고, 막내인 마지드는 약물 남용 및 우울증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시리아인의 최대 사망원인은 박격포였으며 총격, 포격, 폭발물, 공습이 뒤를 이었다(사진=ⓒ셔터스톡)

결국 바샤르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하페즈가 사망한 직후 시리아 의회는 대통령 취임 연령을 40세에 34세로 낮추는 사상 초유의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킨다. 2000년 당시 바샤르의 나이 34세였다.

2011년 바샤르 정부는 교육, 고용, 의료 등의 기본 서비스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하지만 민중 봉기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시위대의 요구는 바샤르 대통령 퇴임으로 격화됐다. 시위대는 무력 진압에 맞서는 한편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정부는 시위대를 '외세의 지원을 받은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전면전을 선언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시리아 내전의 시발점이다.

시리아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충돌의 최대 피해자는 민간인들이다. 특히 아무 죄 없는 여성들과 아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음하고 있다. 영국 BBC가 시리아인권단체 VDC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2년 시리아인의 최대 사망원인은 박격포였다. 그 외에 총격, 포격, 폭발물, 공습이 뒤를 이었다.

VDC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작년 6월까지 사망한 시리아인이 18만 9,654명에 이른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시리아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민간인 11만 613명을 포함 작년 8월 기준 시리아인 사망자 수가 36만 4,371명이라고 발표했다.

시리아 내전은 8년을 거치는 동안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처음에는 바샤르 대통령의 독재 정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온건 반군의 대결 구도였다. 하지만 얼마 안가 미국, 영국, 프랑스가 온건 반군을 지원하고, 러시아와 이란이 아사드 정권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더욱이 반군 세력에 이슬람국가(IS) 세력까지 가담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명실상부 대리전의 성격을 띤 국제전으로 확대됐다.

시리아 내전이 끝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희박하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각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기 때문이다. 당장 평화협상부터 난항이다. 반군은 현 정권의 교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바샤르 대통령은 물러날 뜻이 전혀 없다. 국제연합(UN)의 주도로 시리아 평화협상이 시작된 시기가 2014년이지만 좀처럼 진척이 없다.

[라이헨바흐=장희주 기자]